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29> 남궁현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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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보훈청과 함께하는 우리고장 애국지사 / <29> 남궁현 애국지사
  • 목포타임즈
  • 승인 2013.12.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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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남궁현(南宮炫, 1901년 4월 18일~1940년 4월 25일).

▲출생지 : 전남 영광

▲운동계열 : 항일무장투쟁

▲훈격 : 애국장(1990)

▲공적내용
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 전주읍(全州邑)내 남문 밖의 장터에서 박태동, 고형진(高衡鎭) 등과 함께 학생을 포함한 다수의 시민 군중에게 다량으로 제작한 태극기를 배포하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피체되었다.

이로 인하여 1919년 8월 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공소하였으나 1919년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7년 3월 조선청년총동맹 영광청년회(靈光靑年會)에 가입하고, 동년 10월에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식민지 노예정책에 항거하는 등 항일투쟁활동을 하다가 피체되어 1931년 12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았다.

또한 1932년 7월부터 1933년 1월에 이르는 기간에는 전남 영광군(靈光郡) 법성면(法聖面) 법성리(法聖里) 자신의 집에서 정판갑(鄭判甲)과 함께 조선독립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자들의 가족을 위한 생계지원과 구원기구를 설립하기 위해 석수어(石首魚) 건조사업을 계획하다가 피체되어 1934년 7월 3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아 공소하였으나 1934년 11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고 나와 계속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9년 10월 31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육군형법(陸軍刑法) 위반으로 금고(禁錮) 8월형을 받았다.

그는 이러한 옥고의 결과로 인하여 1940년 4월 25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목포타임즈신문 제80호 2013년 12월 18일자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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