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칼럼] “영산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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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칼럼] “영산나루!”
  • 목포타임즈 기자
  • 승인 2020.10.3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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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전 노무현재단 전남공동대표
문정인 전 노무현재단 전남공동대표

문정인 전 노무현재단 전남공동대표, “영산나루!”

주말 오후 아내의 재촉에 길을 나섰다. 가을비 치곤 제법 여러 날 내린다. 비에 젖은 낙엽은 침묵의 아우성이다. ‘영산나루’ 이곳은 광기도 분노도 미움도 없다. 오직 쓸쓸함의 사색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차분할 뿐이다. 카페 구석자리에 햇살이 수줍게 밀려든다. 책갈피에 시간이 켜켜이 묻었고,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이파리는 바스락 부서진다. 지난여름 격정적이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낡은 잔해가 되어 진혼곡을 부른다. 이렇듯 가을은 마지막 본색을 드러내며 고해를 토해낸다.

되바라진 커피 맛을 거부하는 아내는 향 그윽한 국화차를 머금고 나는 막 볶아낸 커피 냄새의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 이곳은 나주시 영산강 변에 위치한 작은 나루 영산포다. 고려시대 흑산도 앞 바다에 위치한 영산도는 왜구 침입이 잦았다. 이에 공민왕은 영산도 주민들을 이곳 나주로 이주 시켰고 이곳 이름을 영산포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전라도 음식에 홍어가 없다는 건, 한약 제에 감초가 빠진 거나 다름없다. 사실 홍어는 이곳 영산포가 본가이다.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는 영산강을 따라 영산도 주민들이 살고 있는 영산포에 도착해 진미를 발휘했다.

지금이야 영산강 하구둑과 4대강 사업으로 보들이 설치되어 쇠약해졌지만 당시에는 넓은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벌일 정도로 큰 강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수달장군이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왕건과 싸웠던 능창이다. 어쨌거나 흑산도 바다에서 잡힌 홍어는 긴 항해를 준비해야 했다. 홍어가 부패하지 않도록 항아리 안에 볏짚을 깔고 홍어를 넣은 다음 다시 볏짚으로 덮어 영산포까지 싣어 날았다. 그 과정에서 발효된 특유의 냄새가 지금 홍어 맛이다. 영산도에 살았던 영산포 사람들의 손에 의해 홍어의 변신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영산강 하구둑을 막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영산포는 꽤 번성한 포구로 통했다.

강 일부가 육지가 된 곳에는 영산강을 밝혀주었던 등대가 지금도 남아 있는걸 보면 당시 이곳의 명성은 미루어 짐작이 된다. 지금 영산포는 홍어의 거리를 조성하는 등 과거의 영광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도도히 흐르는 영산강을 따라 잘 조성된 공원과 꽃들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은다. 일제강점기 건축물과 거리를 둘러보며 아픈 역사의 기록도 읽어보면 좋다. 황포돛배를 타고 영산강을 탐사하는 코스는 인류문명은 강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배울 수 있다.

출출할 쯤 시장기를 채워주는 음식으로 홍어정식을 권한다.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전, 홍어튀김, 홍어회, 홍어삼합 등 그야말로 홍어의 무한변신이다. 영산포에서만 맛 볼 수 있다. 특히 갈파래 또는 보리를 넣고 끓인 홍어애국은 그 맛이 고소하고 독특하며 아주 특별하다. 홍어를 잘 아는 사람들이 감춰놓고 먹었던 애국이었으니 그 맛은 격이 다르다. 이비 그치면 겨울채비를 서둘려야하겠지만 영산나루에는 가을의 마지막 정취가 아직 걸려있다. 답답한 일상에 마음의 사유가 필요한가. 그럼 떠나라. 그 곳이 전라도 영산포 영산나루이면 더 좋을 듯싶다.

몇해 전 어느 가을날.

<2020년 10월 29일 7면>

<밝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 목포타임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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