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근 편집인<교육학박사> “우리는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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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근 편집인<교육학박사> “우리는 만나야 한다!”
  • 호남타임즈
  • 승인 2017.05.0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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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덕근 편집인(교육학박사)
우리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고 혼자 걷기를 하게 되는 시기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길조심 하라.’는 말이었지 않았을까? ‘길 위에 인생이 있다.’는 큰 가르침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집을 나설 때 ‘操心해라.’고 하는 이 낱말도 사물에 眩惑되지 말라는 부모님의 간절한 당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길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盛衰를 결정하는 重且大한 선택으로 점철되어 至難한 드라마 한 편을 쓰게 하는 것 같다.

어두운 밤에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당황하며 헤매다가 겨우 길을 찾았을 때, “아휴, 살았구나!” 하고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말에 놀랐던 적도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태어나는 날부터 지금까지 절차탁마하며 찾고 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길이란 수많은 사물을 만나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즉 상황에 따른 고뇌에 찬 사고와 결단의 산물인 것이다.
살아가면서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보다 누구를 알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어릴 때 ‘위인전’을 읽게 하는 이유도, ‘至樂 莫如讀書, 至要 莫如敎子’를 강조한 聖人들의 깨달음도 사람으로서 가야 할 길을 선택하기 위한 큰 도전의 하나이며, 인생에서 빛을 얻기 위한 大作業인 것이다.

‘인생은 相逢이다.’라는 대문호 카프카의 말은 만남이란 생명을 잉태하게 하며, 인간 세계에서 삶이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준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는 것처럼, 만남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상대 없는 세계는 절대 세계인 영적 세계에서만 가능함에도 상대를 인정치 않는 愚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음과 양, 위와 아래, 선배와 후배, 선임과 후임 등 우리는 상대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짐승이거나 신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있는 그대로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기에 마음이 가는 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속삭여 준다고 생각한다.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특히 사물과 관계의 연속, 특히 인간관계 속에서 내 삶도 지속될 수 있다는 깨우침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자신을 가꾸기 위해서는 음식만이 아니라 의로움과 바름이라는 정신과 만나야 한다. 밤과 낮이 서로 만나야만 세상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을 얻으려면 겸손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배움은 익히는 과정을 만나 숙성이 되어야 하고, 보고 들은 外物은 自己化라는 고난의 여정을 거쳐야 한다. 생각도 自習을 만나야 하며, 일상생활이 만나야 할 것은 ‘禮’인 것이다.

수업 시간도 주제와 제재에 따른 내용을 이해하고 체득하는 시간, 교사와 눈 마침과 반복적인 聲讀, 깨우치는 시간을 만나야 한다. 또한 생각도 다짐이라는 覺醒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움의 숙성에서 세상에는 필요 없는 것이 없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단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과 사물이 각자의 召命을 지닌 소중한 존재라는 엄연한 지혜에 도달하게 되는 것 아닐까?

기분이 가라앉은 사람이나 누워 있는 사람에게는 기가 없다고들 한다.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대부분 누워 지낸다. 그 몸을 서게 하려면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는 기분 좋은 말이 선행되어야 한다.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정신이 중요하듯이 몸도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은 시작이며 끝인 것이다. 정신(靈魂)이 나가면 尸身이 되듯이 정신은 육체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禮’를 만나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이 실리는 말이 ‘감사’라고 한다. 듣고 또 들어도 싫지 않은 감사는 사람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고 하지 않은가? ‘왜 工夫하는가?’ 원망과 불신이 갈등을 부르고 긴장과 번민이 삶을 지치게 하는 세상 이치를 깨닫고 그 지혜를 실천하려고 배우는 것이다.

만남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나는 人事다. 시작은 하늘에서 받은 정신과 부모가 준 육체로 시작해서 하늘과 부모의 소명을 다했을 때 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의미 깊은 시작은 자신과 타인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인식에 있다. ‘내가 스스로 깨면 병아리, 남이 억지도 깨면 후라이’라는 이 현명한 사실을 자신에게 적용하며 실행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에 불편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 풍요로워지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깨달음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봄이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처럼, 우리의 미움도 고마움으로 자리를 내어줄 때 우리의 삶의 향기를 피우게 될 것이다.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하지 않던가?

자연은 씨를 뿌리고 가꾸며 거두어 저장하는 여정을 묵묵히 순환한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이치와 하늘의 섭리를 만나야 한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삶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따르는 과정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工夫이지 않은가? 工夫를 너무 좁게 해석하는 愚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국민의 92%가 내용을 읽어도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인데, 성인의 25%는 1년에 한 권도 안 읽는다고 한다. 교육현장에서 수행평가에 독서를 반영하고 있지만 진짜로 읽는 지까지는 확인할 수는 없고, 책 내용을 요약해주는 학원도 있다고 한다. 문해력 저하는 큰 사회적 문제를 낳을 것이다. 우리에게 시급하고 절실한 것은 ‘時中’과 ‘正中’의 만남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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